한국에서 사업개발자로 산다는 것
많은 국내 기업들이 사업개발자를 채용하고 있지만, 정작 그 직무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채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BD라는 직함 아래에서, 대기업에서는 '내부 조율자', 중견기업에서는 '고급 영업사원', 스타트업에서는 '만능 해결사'처럼 전혀 다른 역할을 기대받습니다. 채용 공고에는 그럴듯한 문구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실제 조직 안에서는 BD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어디까지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기업 규모별 실제 사례를 통해, 한국의 BD가 각자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역할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대기업
대기업 BD의 역할은 복잡한 조직 구조와 의사결정 체계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실제 사업으로 구현하니다. 대기업에는 3~5년간 실험할 여유가 있는 대신, 움직이게 만드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장벽입니다.
성공 사례
전통 제조업 기반 A그룹에서 성공한 BD는 조직의 관성을 정면으로 깨뜨리기보다, 그 관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실리콘밸리식 혁신 기술을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라는 조직이 익숙한 언어로 번역했고,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지 않고 작은 PoC로 시작해 데이터로 효과를 증명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각 사업부에서 디지털 전환에 관심 있는 인물을 찾아 공동 추진자로 만들었고, 18개월 이상의 긴 호흡으로 접근하며 조직이 변화를 소화할 시간을 확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AI 기반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을 도입해 연간 200억 원 규모의 비용 절감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실패 사례
반면 B대기업에서 실패한 BD는 조직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글로벌 트렌드만 좇았습니다.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최신 기술에 집착했지만 실제 비즈니스 임팩트와의 연결점을 만들지 못했고, 내부 이해관계자의 우려를 '보수적 사고'로 치부하며 협업 구조를 스스로 차단했습니다.
외부 파트너십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내부 역량을 활용한 실행 전략도 부재했습니다. 2년 동안 수십 건의 PoC를 진행하고도 사업화된 프로젝트는 단 한 건도 없었고, 결국 팀은 해체됐습니다.
2. 중견기업
중견기업은 대기업처럼 오래 실험할 여유도 없고, 기존 영업 조직만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중견기업의 BD는 당장의 매출과 미래 성장 동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성공 사례
C제조업체에서 성공한 BD는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해외 진출에 먼저 집중해 조직 내부의 신뢰를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3개월간 베트남과 태국 현지를 직접 조사하며 책상 위 데이터가 아닌 실제 시장 정보를 수집했고, 단순 수출이 아닌 현지 파트너와의 장기 관계를 기반으로 시장 진입 전략을 설계했습니다.
대규모 투자 없이도 핵심 파트너십을 활용해 최대 효과를 끌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1년 만에 해외 매출 50억 원을 달성했고, 이는 현재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 됐습니다.
실패 사례
D서비스기업의 BD는 조직의 역량과 무관하게 유행만을 좇았습니다. 구독 서비스, O2O 등 유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에만 집중하며 내부 역량과 기존 고객 베이스를 고려하지 않았고, "일단 해보자"식의 검증 없는 접근으로 자원만 소모하는 악순환을 반복했습니다. 6개월 동안 5개의 신사업 아이디어를 검토했지만, 어떤 프로젝트도 실행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3. 스타트업
스타트업에서 BD는 명확한 업무 범위보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서 해결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정의 없는 직무'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회사 생존에 필요한 모든 성장 구조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가장 본질에 가까운 BD일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
E인공지능 스타트업에서 성공한 BD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고객이 없다는 현실을 정확히 짚었고, 기술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대신 고객의 실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단순 미팅이 아닌 실제 의사결정권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개발했고, 가능성 담론이 아닌 구체적 ROI 시뮬레이션으로 고객을 설득했습니다. 첫 대기업 고객을 확보한 뒤 연 매출 3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이를 기반으로 시리즈 A 투자 유치까지 성공했습니다.
실패 사례
F콘텐츠 스타트업의 BD는 명확한 가치 제안 없이 관계 중심 접근에만 의존했습니다. 다양한 업계 인사들과 활발히 미팅을 진행했지만, 상대방의 니즈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회사 소개만 반복했습니다.
"좋은 관계가 곧 좋은 비즈니스로 이어진다"는 막연한 기대에 머물렀고, 네트워킹 자체가 목적이 되어 성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수십 차례의 미팅에도 불구하고 단 한 건의 실질적인 계약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BD의 역할
기업 규모별로 바라본 한국의 사업개발 직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때로는 '정의되지 않은 역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된 패턴이 드러납니다. 성공한 BD는 조직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읽고, 그 조건 안에서 성장의 구조를 설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관성을 활용할 줄 알았고, 중견기업에서는 단기 성과로 먼저 신뢰를 만들었고, 스타트업에서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 하나에 집중했습니다.
반대로 실패한 BD는 하나같이 조직의 현실과 동떨어진 채 트렌드나 관계라는 막연한 기대에 머물렀습니다.
문제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시선,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는 감각, 변화의 흐름을 설계하는 역량. 직무가 모호하든 명확하든,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 사업개발자(BD)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