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사업을 시작하는 일과 회사에 들어가는 일. 우리는 흔히 이 둘을 반대편에 놓곤 합니다. 사업가는 자유를 얻는 대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고, 직장인은 안정을 택하는 대신 자유를 일부 내려놓는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이태형 BD는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았습니다. 잘 키운 사업을 엑싯한 창업가가 왜 다시 회사로 돌아갔을까요.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왜 사업의 끈을 놓지 않는 걸까요. 지금 그는 사업가일까요, 직장인일까요.
이 인터뷰는 사업과 직장의 경계가 흐릿한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인터뷰 네이게이션
1. 아르바이트에서 드러난 창업가의 감각
2. 사업을 멈추지 않은 채 직장을 택한 이유
3. 발로 뛰는 사업개발자의 원칙
4. 인도에서의 새로운 도전과 마지막 꿈
아르바이트에서 드러난 창업가의 감각
Q. 많은 일을 동시 하고 있는 태형님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궁금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먼저 해주세요.
저는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지금은 창업교육회사인 유디임팩트에서 글로벌본부를 총괄하고 있어요.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 글로벌에서 '창업 교육'이라는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드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글로벌본부는 작년에 신설됐는데, 1년 만에 유의미한 성과가 나왔어요. 일본과 인도네시아는 정부, 대기업과의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요. 저는 그중에서도 인도에 가장 집중하고 있습니다.

Q. 특정 스킬이 아니라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게 흥미롭네요. 생각해보면 커리어의 시작 자체가 창업이었으니, 결정하는 일을 가장 오래 해오신 셈이고요. 첫 커리어를 직장이 아니라 창업으로 시작하셨죠. 사업부터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으세요?
명확한 계기 하나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한 직장을 거의 40년 다니셨어요.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작년에 풀무원 총괄 CEO가 되셨죠.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고, 지금도 사업적인 조언을 가장 많이 구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좀 달랐어요. 아버지를 보면서 '직장인 월급으로는 형편이 나아지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 '나는 좀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머리 회전이 빠르고 기회를 잘 잡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전공은 체육이었는데, 유소년 체육을 가르치는 알바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바비보다 더 벌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센터 사장님께 직접 제안했어요. “영어로 수업을 할 테니 객단가를 높인 새 과정을 만들어보자." "아이들을 데려오는 어머니들에게도 운동을 가르쳐보자." 같은 시간을 들여 매출을 더 낼 방법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궁리했습니다.
영어 과외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명씩 가르쳐서는 원하는 만큼 벌 수 없으니, 지역 신문 지면을 사서 그룹 과외를 홍보하고 나중엔 거의 학원처럼 운영했죠. 그때는 그게 창업인 줄 몰랐어요. 돌이켜보니 늘 창업가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었더라고요.

리더십도 어느 정도 타고난 성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이 〈원피스〉였는데, 꿈을 향해 함께 모험하는 여정에 가슴이 뛰었어요. 군대에서는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그사이 친구들이 저보다 1~2년 먼저 취업했는데, 다들 직장을 너무 싫어하더라고요. 매일 회사 가기 싫어하고, 일에서 재미를 전혀 못 느끼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했죠. '회사 생활은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구나.'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창업을 택했습니다.
사업을 멈추지 않은 채 직장을 택한 이유
Q. 말씀을 들어보니 태생부터 사업가란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서 첫 사업이 더 궁금해집니다. 첫 사업은 엑싯까지 하셨죠?
학창시절을 외국에서 보내서 외국인 친구가 많았어요.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에 놀러 오는 친구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자연스럽게 많았죠.지금이야 K컬처가 널리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다들 서울의 대표 관광지 말고는 다른 지역을 알지도,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한국은 로컬마다 다양한 문화와 즐길 거리가 있는데, 이걸 연결해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에어비앤비 체험 같은 역할을 하는 한국 로컬 관광 플랫폼을 런칭했어요. 그런 기회 자체가 없던 시절이라 외국인들 사이에서 바이럴이 됐고,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성과를 인정받아 런칭 후 3년만에 엑싯까지 하게 됐습니다.


Q. 첫 창업부터 빠르게 성과를 냈네요. 그런 분이라면 엑싯 이후에 다시 사업을 할 것 같은데, 의외로 회사에 들어가셨어요. 이유가 있으셨겠죠.
회사에 들어간 건 맞지만, 사업을 멈춘 건 아니에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사업은 계속 병행했습니다. 그게 가능한 조건의 회사를 일부러 찾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업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출근해서는 회사 일을 열심히 하고, 퇴근하면 매일 조금이라도 제 사업에 시간을 썼습니다. 저한테 사업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재미거든요. 누군가 이런 사업을 하고 싶다며 아이디어를 던지면 같이 고민하고, 생각한 걸 나누고, 필요한 걸 돕다 보면 사업은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Q. 그럴 거면 차라리 회사에 가지 않고 그 시간에 사업을 더 하는 게 낫지 않으세요?
창업을 해보니, 생각보다 스스로 성장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성장하려면 전문성을 키우거나 외부 자극이 필요한데, 대표로서 하는 일은 반복되기 쉽고 한 가지 사업에만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반면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주니어 때 매일 혼나고 헤매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니 저보다 경험의 폭도 넓고 시장에 대한 이해도 훨씬 깊어지더라고요.
주니어 시절에 사수가 도와주고, 그 덕에 시야가 트이고, 그렇게 단계를 밟아 성장하는 과정. 저는 창업을 너무 빨리 시작하느라 그 배우는 시기를 놓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고민을 아버지께 털어놨어요. 마침 아버지 직장 동료분이 퇴사 후 지구인컴퍼니라는 스타트업으로 가셨다며, 그분께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셨죠. 그분이 감사하게도 와서 한번 일을 배워보라고 하셔서 거기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떤 직무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플랫폼도 기획해봤고 투자도 받아봤지만, 그렇다고 전략실이나 투자 IR로 바로 갈 실력은 아니었어요. 일단 세일즈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영업팀에 들어갔습니다. 창업했을 때도 제 아이템을 직접 팔러 다녔으니,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Q. 예상대로 회사 생활은 많이 배우는 경험이 됐나요?
혼자 영업하는 것과 영업팀에서 일하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단순히 파는 걸 넘어, 영업 퍼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다음 콜드 액션은 어떻게 가져가는지, 매출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왜 베이스 매출이 가장 중요한지. 세일즈맨의 기본을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고 실력을 쌓았어요.
그러면서도 돌아보면 저는 세일즈만 한 게 아니라 계속 사업개발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프라인에서 벗어나 온라인으로 진출해보면 어떨지 제안하고, 이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겠다 싶으면 자진해서 미국 아마존에도 팔고, 인디고고나 킥스타터에서 펀딩도 해봤습니다. 이 회사가 어떻게 더 스케일업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어요.
첫 회사에서의 감사한 여러 배움을 토대로 그 이후에 이직하면서 다양한 직무를 경험했고, 지금까지 직장인과 창업가의 일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Q. 창업부터 국내 세일즈, 글로벌 신사업까지. 쉬지 않고 사업개발을 해온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태형님은 사업개발을 어떻게 정의하세요? 창업가로서의 사업개발과 직장인으로서의 사업개발은 다른가요?
처음엔 사업개발이 창업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할 사업을 기획하고, 만들고 싶은 가치를 찾고, 그게 진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일. 이건 창업자가 아니면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업개발이라는 직무가 따로 있다는 게, 창업자였을 때는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와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회사가 규모를 갖추면 대표가 할 일이 많아지고, 그 일의 난이도와 단계도 달라집니다. 기회는 더 많아지는데 그중 무엇이 잘될지는 모르고, 그렇다고 안 하면 도태되죠. 그 기회를 계속 발굴해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그 일을 진심으로 재미있어하고 잘하고 싶어하니까, 굳이 내 회사를 차리지 않아도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로 뛰는 사업개발자의 원칙
Q. 태형님이 생각하는 사업개발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내가 사업개발을 하면서 이건 꼭한다, 이건 꼭 안한다 하는 DO&DONT가 있으세요?
저는 책상에 앉아서 하는 시장조사는 거의 하지 않아요. 사실 요즘은 AI가 더 잘해주기도 하고요. 리서치할 시간에 그 시장을 아는 사람 한 명이라도 더 빨리 만나러 나갑니다. 사업개발자는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료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가 훨씬 빠르고 정확하거든요. 이미 보고서로 정리된 시장이라면, 결국 한 박자 늦은 시장입니다.
새로운 문제를 풀어야 할 때는 늘 그 문제와 관련된 사람을 먼저 만나려 했어요. 그 사람이 문제를 직접 풀고 있든, 옆에서 지켜봤든, 이미 실패해봤든 상관없습니다. 그 자리에 있어본 사람에게 듣는 30분이, 책상에서 사흘 동안 자료를 뒤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알려줘요.
물론 저만 좋자고 만나면 아무도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나러 가기 전에 항상 서로 윈윈할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가요.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이 자리가 상대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를 미리 정리하지 않으면 미팅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게 안 되면 제가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만남은 만들어지지 않아요.
Q. 지금 인도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데, 이 시장도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지금도 사람을 많이 만나고 계세요?
인도야말로 경험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절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티어2, 티어3 지역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지난 출장에서 '사람 사는 곳인데 그렇게 위험하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판단을 그르친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사업성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상으로 팀원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일들이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정말 무모했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조사해도 위험과 안전의 경계는 판단이 안 돼요. 그건 진짜 그 자리에 가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디까지 가도 괜찮은지, 인도 비즈니스에서 조심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지. 매뉴얼로는 잡히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있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하면서, 글로벌은 또 다른 사업개발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글로벌을 전문가로서 시작한 게 아니라 전문성을 키우려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인 네트워크가 편하긴 하지만 일부러 그쪽을 피하고 현지 사람들과 최대한 만남을 이어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인도에서의 새로운 도전과 마지막 꿈
Q. 듣기만 해도 올해는 태형님께 참 도전적인 한 해겠네요. 사업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올해 이뤄졌으면 하는 게 있으세요?
우선은 제가 다니고 있는 유디임팩트가 세워놓은 목표들을 다 이루고 싶어요. 직장인에게는 그게 제1의 비전이자 미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리더로서 제 역할은, 그 목표를 잘 해석해서 팀원들의 동력으로 만들고 함께 가는 거라고 봐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인도에서 2만 명 이상의 창업가 교육을 진행하고, 인도에서만 10억 이상의 매출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매출의 100%가 한국에서 제가 직접 소통하는 클라이언트에게서 나오는데, 이 비중을 절반 이하로 낮추고 팀원들의 역할을 키워주고 싶어요. 인도 안에서 자생적으로 영업이 일어나면서, 인도 법인이 스스로 굴러가는 것. 말하다 보니 할 일이 참 많네요.
Q. 직장인 이태형 말고, 사업가 이태형으로서 따로 품은 꿈이나 목표는 없으세요?
좀 엉뚱하게 들리실 텐데, 제 꿈은 죽기 전에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걸 보는 거예요. 사실 제 꿈이 축구선수였어요. 해외에서도 축구를 했는데 부상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죠.

이제 선수로 뛸 순 없지만, 사업가로서 축구 산업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날, 선수들 유니폼 가슴의 로고가 제가 관여한 회사였으면 좋겠어요. 지금부터 100개쯤 회사에 일로 엮여 있으면, 그중 하나는 걸리지 않을까요? (웃음)
OUTRO
‘결정권을 가진 사람.’ 이태형 BD가 자신을 소개한 첫 문장입니다. 처음에는 직무명을 거부하는 일종의 자존심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지금은, 그 한 줄이 그의 삶의 형식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학창시절 영어 과외를 그룹 과외로 바꾼 결정. 군대 후 회사가 아닌 창업을 택한 결정. 첫 사업을 엑싯한 뒤 다시 사업 대신 직장을 택한 결정. 직장에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사업을 내려놓지 않은 결정. 그가 직장인이면서 사업가일 수 있는 이유, 사업가이면서 직장인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그가 두 자리 모두에서 '결정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직무명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자리에 있든, 결정의 무게를 직접 짊어지는 자리에 자신을 가져다 두는 사람이니까요.
이 인터뷰를 마치며, 다음 세대 사업개발자의 모습이 점점 그를 닮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업과 직장의 경계가 흐려지고, 한 사람이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시대. 그 시대의 사업개발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직무 이전에, 결정하는 자리에 자신을 두는 습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집・글: 이혜미 gbd.hyemi@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