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글로벌 진출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보통 한 방향의 화살표를 떠올립니다. 한국에서 출발해 더 큰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그림이요. 그런데 박시진 대표의 지도는 좀 다릅니다. 한국에서 출발해 일본에서 7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창업 경험과 다양한 커리어를 업고 다시 일본을 향합니다. 직선이 아니라 크게 한 바퀴를 도는 모양입니다.
스스로를 ‘기업가정신으로 무장된 비즈니스 컨설턴트’라고 부르는 사람. 자기 사업보다 남의 사업이 잘될 때 더 기뻐하는 사람. 이 인터뷰는 그녀가 왜 그렇게 멀리 돌아왔는지, 그리고 그 길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따라갑니다. 어쩌면 가장 빠른 길이 늘 직선은 아니라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네이게이션
1. 비즈니스 아티스트, 그리고 일본에서의 출발
2. 창업이라는 미션, 그리고 첫 실패
3. 시장이 찾으면 해내는 것이 BD의 일
4. 일본 진출을 꿈꾸는 한국 기업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5. 1,000억을 벌게 해주겠다는 목표
비즈니스 아티스트, 그리고 일본에서의 출발
Q. 대표님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가 워낙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때마다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10년쯤 전에는 저를 ‘비즈니스 아티스트’라고 소개했어요. 사업 기획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뭔가를 계속 그려나가는 일이거든요. 딱 잘라 재단할 수가 없어요.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어떨 때는 상상의 영역에 있다가 또 어떨 때는 재무 수치를 맞춰야 하고. 그러다 보니 늘 새로운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비즈니스는 딱딱하고 수치적인 것, 아트는 말랑말랑하고 감성적인 것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기획 업무를 하다 보면 그 둘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위아래로, 좌우로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하고요. 한 가지만 생각해선 안 되고 사고가 늘 열려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항상 부족하고. 그래서 전방위로 다 알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럼 차라리 비즈니스를 아트처럼 하는 사람이 돼보자, 그렇게 이름을 붙였죠.
그러다 경력이 20년쯤 되니까 최근에 저를 다시 정의하게 됐고요, 지금은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비즈니스 컨설턴트’라고 오히려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Q. 스스로를 분명하게 소개하기까지 20년의 시간이 걸렸군요. 그 여정의 시작이 참 궁금합니다. 첫 커리어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일본에 가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첫 일이 기획이었어요. 기획이라고 하면 좀 멋있어 보이잖아요. 처음엔 이벤트 마케팅, 프로모션 마케팅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 조금 더 나아가 사업 기획을 맡게 됐는데, 하다 보니 결국 숫자를 알아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숫자 공부가 필요해 대학원에 갔고,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그러고 오니까 IR 기획 같은 일도 맡겨주시고, 사업 기획을 하다 보니 아예 경영 전략까지 하게 됐죠. 그 모든 걸 한 회사에서 경험했어요.
Q. 시작이 일본이셨던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셨나요?
사실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어요. 정말 우연한 기회로 가게 됐죠. 대학 졸업하고 미국에서 1년쯤 공부하고 싶어서 비자까지 받아뒀었어요. 그때 사촌 오빠가 병역특례로 자기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제가 미국 가기 전에 용돈도 벌 겸 와서 일 좀 도와달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일을 돕다가, 오빠가 일본에 잘 아는 지인이 있다며 한번 만나보고 오라고 다리를 놓아줬어요. 그 후로 연락을 계속 주고 받게 되었는데 이분이 나중에 독립해서 회사를 만드신 거에요. 그 회사가 3년 차쯤 됐을 때 저한테 오퍼를 주셨어요. 연락을 주고 받으며 그분과 일본이라는 나라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됐고 일본은 한국보다 배울 기회가 많겠다는 생각에 한번 해보기로 결심을 했어요.
Q. 그렇게 우연히 갔던 일본에서 무려 7년을 계셨네요. 이직하지 않고 한 회사에서 계속 계신건가요?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이라 오히려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한 회사였지만 정말 다양한 직무를 해볼 수 있었거든요. 대기업이었으면 그렇게 많은 걸 다 경험하긴 어려웠겠죠. 그리고 그게 성향에는 잘 맞았어요. 다만 갈증은 있었어요. 충분히 배우고 있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친구들을 보면 교육도 많이 받고 시스템도 좋아 보이는데, 저희는 시스템이 별로 없었거든요. 혼자 부딪히며 다 알아내야 했어요.
창업이라는 미션, 그리고 첫 실패
Q. 그 갈증이 퇴사의 이유이기도 했나요?
아니요, 그 갈증으로 대학원에 가겠다고 결심했어요. 아직 그만두기엔 멀었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어쨌든 한 텀은 지나봐야 하는데 3년 만에 나오는 건 너무 일렀죠. 그럼 어떻게 버티지 고민하다가, 차라리 외부에서 더 도전적인 환경을 만들어보자 싶어 대학원에 갔어요. 거기서 자극을 받으니까 신기하게 회사에서도 더 중요한 일들을 맡게 되더라고요.
Q. 그 대학원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요.
제가 간 곳은 일본에서 직장인들이 많이 가는 비즈니스 스쿨이었어요. 보통 와세다, 게이오의 비즈니스 스쿨이 전통적으로 유명한데, 여긴 그런 곳은 아니고 신흥 학교였죠. 그런데 학장이 글로벌하게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어요. 일본의 대기업 재벌그룹에서 고속 승진으로 올라간 뒤 독립해 벤처캐피탈을 만들고, 명성을 쌓은 다음 비즈니스 스쿨을 세운 케이스예요. 아시아의 하버드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고, 포브스 일본판에 실릴 정도로 스타급 CEO였죠.
명성이 곧바로 학교로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일본 상장기업 3,000개를 다 영업하다시피 해서, 중간관리자층을 단과생으로 모집한 뒤 전일제 학생으로 끌어들이는 마케팅을 정말 잘하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졸업생들이 일본 비즈니스계를 망라하는 7,000명 규모의 네트워크가 됐죠. 와세다·게이오가 아카데믹이라면, 여긴 완전히 비즈니스 스쿨로 자리 잡은 거예요.

제가 들어갔을 땐 딱 3년 차라 유명하지 않았어요. 그게 오히려 제 전략적 선택이었죠. 와세다나 게이오는 한자로 두세 페이지짜리 논문을 한 시간 안에 써내야 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제가 그만큼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한국인도 많고요. 그런데 이 학교는 그당시 일본인밖에 없었어요. 그럼 아시아인 중 한 명으로서 어떻게든 날 뽑게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주변 사람을 다 끌어들여서 원서도 봐달라, 면접 트레이닝도 해달라 해서 어떻게든 들어갔어요. 전략이 다행히 잘 통했죠.
들어가 보니 학장님이 ‘창업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계속 바람을 넣으시는 거예요. 저는 회사 일을 더 잘하려고, 재무든 경영자 마인드든 배우려고 갔는데 또 창업을 하라네요. 그렇게 기업가정신을 계속 배우다 졸업할 때쯤 결론이 딱 내려졌어요. 능력으로 창업할 사람과 못할 사람이 갈리는 게 아니라, 창업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한 번은 해봐야 하는 것. 성장하고 싶은 사람에게 창업은 가장 큰 자기계발의 도구라는 결론이요. 나이가 더 들면 더 못한다는 긴박감도 있었고요.

Q. 회사 일을 더 잘하려고 가셨는데, 오히려 창업의 명확한 계기가 돼버린 거네요.
맞아요. 그때 당시 저희 대표님은 전형적인 영업맨 스타일이라 그런 리더만 봤기 때문에 나같은 성격은 창업이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학장님은 완전 다른 스타일이었죠. '아, 저런 리더십도 있구나. 리더십이 꼭 한 가지 스타일만 있는게 아니구나. 그럼 나만의 리더십을 찾아나가면 되겠네.'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한 회사에 오래 있다 보니 리더의 상도 여러 케이스를 못 봤었는데, 학장님이 좋은 계기가 되어주셨죠.
원래 창업 생각은 그 전부터 있었어요. 사촌 오빠 회사 일을 보면서 강하게 들었거든요. 그때가 IMF 지나고 닷컴 버블도 꺼진 뒤, 제가 대학 졸업할 무렵이었는데 취업이 곧 안정이라는 공식이 제 머릿속엔 없었어요. 언젠가는 사람이 우산 속에서 나와 자기 무기를 스스로 만드는 시대가 올 텐데, 그때 가서 나오려면 늦다 싶었죠. 저희 집안은 보수적인 편이라 아버지는 안정적인 길을 밟으라고 하셨지만, 사촌 오빠 회사에 가보니 제가 살던 세계가 너무 좁았구나 싶었어요. 그 오빠 주변 친구들이 다 창업을 한 거예요. 창업이 너무 당연한 세계. 창업을 안 하는 게 오히려 기회비용처럼 느껴졌죠.
Q. 7년을 다니다 비로소 한국에 와서 창업을 하셨으니, 고민이 정말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일본에서 창업할지, 한국에서 할지도요.
일본은 '도 아니면 모'라는 게 결론이었어요. 완전히 일본인이 되거나, 아니면 빨리 빠져나오거나. 어정쩡하게 남으면 한국에 와서도 힘들어질 것 같더라고요. 일본 사람들은 우리처럼 빨리 성장해야 한다, 빨리 도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상당히 적어요. 현상 유지, 지금이 좋다, 여기서 조금 더 잘해보자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죠. 그러다 보니 제가 배고파서 빨리 걸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 잘 안 따라오기도 해요. '저렇게까지 해야 돼?' 하면서요.
그런 사회에 살다 보면 정체되는 게 당연해지겠구나 싶었어요. 잠깐 가족 보러 한국에 오면 사람들이 막 치고 다녀요. 그걸 낯설게 느끼는 것만 봐도 제가 이미 일본 사회에 적응해버린 거구나, 속도가 다르구나 싶었죠. 야생마까지는 아니어도,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그런 내가 되고 싶었어요. 현실적으로도 한 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기회는 당연히 한국 사람에게 먼저 가는 것처럼요. 그래서 생리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한국이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그게 13년도였습니다.

Q. 그럼 지금의 에스제이컴퍼니가 첫 회사는 아니신 거죠?
네. 그때는 '더꿈'이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플랫폼 사업을 했어요. 크라우드펀딩이라고 보시면 돼요. 전 회사에서 플랫폼 사업을 하나 맡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땐 회사 지원을 다 받아서 하다 보니 그게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그래서 개발자도 뽑고 디자이너도 뽑고, 고문님도 모시고 시작했죠. 첫 사업이라 힘이 잔뜩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진짜 바보 같은 짓은 다 하면서 배웠죠.
제 나름대로 계산을 쭉 해보니 '이건 내가 할 사업이 아니구나' 싶어서, 15년도에 플랫폼 사업은 접었어요. 더꿈 자체는 한 번 피봇해서 16년도 말까지 유지하다 12월에 폐업했죠. 저의 멘토분이 계셨는데 제가 힘들어 하니 왜 창업했는지 이유를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제 창업 목표가 본인만의 프로젝트가 있는 사람들이 그걸 달성하도록 돕는, 마중물이 되는 일이요. 그게 크라우드펀딩 비즈니스잖아요.
근데 멘토님은 “그걸 꼭 사업으로 할 필요는 없다. 컨설팅도 할 수 있고 사업 기획이 네 특기니까, 그쪽으로 빨리 빼서 역량을 키우고 돈을 번 다음에 나중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업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그만 두라고 딱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자존심에 1년 동안 그 멘토님을 안 뵀어요. (웃음) 에고가 셌던 거죠. 그러다 나중에 다시 찾아가서 "덕분에 정말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렸죠.

시장이 찾으면 해내는 것이 BD의 일
Q. 첫 창업을 접은 뒤 다시 회사로 들어가신건가요?
16년도 이후엔 일본 회사가 한국에 만든 법인의 경영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쪽에 이사직을 받으면서 7년 정도 있었죠. 그 회사에 가기 전, 16년부터 18년까지 2년 정도는 다음 스텝을 위해 이것저것 해봤어요. 대학에서 교수직으로 강의도 했고, 6개월 정도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매니저로 창업보육 일도 했고요.
Q. 대표님 정말 안 쉬시네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창업하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 몸이 힘든 건 아니었어요. 머릿속은 계속 돌아가는데 물리적인 시간은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많거든요. 그래서 그 시간에 여러 가지를 해봤던 것 같아요.

Q. 이사 임원직으로 보낸 7년은 이전 회사 생활과 또 달랐을 것 같아요.
경영 관리를 하고, 초기 세팅을 해주고, 그러다 제가 직접 실무로 뛰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신규 사업을 만들어 초기 KPI를 달성할 때, 초기 고객을 모으고 SNS를 터뜨리는 세팅 같은 건 제가 많이 했죠. 일본의 외국인 특화 부동산 회사였는데, 처음엔 한국인이 일본으로 갈 때 케어하는 비즈니스였다가, 한국도 외국인 200만 명이 오는 국가가 되면서 일본에서 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정착시켜 런칭하는 일을 했어요.
Q. 대표님의 여러 경험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7년을 보내고 이후에 또 창업을 선택하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까요?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였어요. 2022년에 회사가 거의 올스톱 됐거든요. 그런데 그 상태에서도 일본 본사 대표님이 한 명도 안 자르셨어요. 인건비가 계속 나가는데도요. 저는 좀 이상한 책임감이 있어서 '내가 한 사람 몫보다 더 못하면 안 되는데' 싶었어요. 이사로서 그 금액을 받는 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가는 날을 반으로 줄였어요. "나는 다른 데서 돈을 벌 테니 일단 회사 경비를 줄이자. 실무자를 투입하고 나는 빠지겠다"고요. 이후에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 본사가 상장을 준비하며 경영진을 다 일본인으로 교체한 거였어요. 마침 잘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죠.
회사를 만들려고 나온건 아니었는데 그 무렵 외부 일이 많아졌어요. 첫 창업의 러닝이 있어서, 조건이 갖춰지기 전엔 본격적인 창업은 안 한다는 원칙이 있었어요. 그런데 보니까 일본 흐름이 막 불고 있는 거예요. 사람한테 타이밍이 있나 봐요. 일본 인맥들이 하나둘 한국과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사람 소개해줘라" 하는 문의가 빈번해졌어요. 그러던 차에 멘토님이 일본에 IR 프로그램 보내는 일을 맡아달라고 하셨고, 오랜만에 간 일본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2025년 12월쯤부터 완전히 이쪽으로 포커스하게 됐어요.

Q. 컨설팅은 어찌 보면 제3자로서 조언하고 경험을 나누는 일이라, 직접 실행하지는 못하잖아요. 그게 답답하다거나, 내가 말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없으세요?
컨설팅업의 가장 큰 맹점이 그거죠. 사업 기획을 할 때도 조직 안에서 늘 그런 목마름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시장이 필요로 하면 한다'는 스탠스예요. 기획이 필요하면 기획을 해주고, 스타트업이 "실행도 해주세요" 하면 실행도 합니다. "나는 기획만 할래, 실행은 다른 사람이"가 아니에요. 실행하려면 전략이 필요하니까 그 부분을 같이 하고, 기획과 실행을 함께 가는 거죠. 전략 기획이 제 전문성이 더 강한 영역이고, 이걸 뽑아내는 게 저한텐 치트키 같아요. 사람마다 구르는 재주 하나씩은 있다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에요. A라는 마케터와 저를 비교하면 당연히 A가 훨씬 잘하죠. 다만 전략 컨설팅에 더해, 제가 해야 하는 부분은 일단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일본 쪽과도 제 일은 브릿지 역할이 많아요. 제가 다 전문적으로 해드린다기보다, 먼저 고객의 니즈가 있는지 테스트하는 일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가능하니까요. 니즈가 발견되면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팀에 넘겨드리는 거죠.
일본 진출을 꿈꾸는 한국 기업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Q.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진출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요. 요즘 글로벌 하면 다들 일본을 떠올리잖아요. 양쪽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지점, 모두가 반복해서 실수하는 요소가 있을까요?
확실히 있어요. 한국 기업도, 일본 기업도 양쪽 다 자신들만의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진출하는 분들은 대기업 혹은 도약단계의 스타트업 등 성공경험을 가지고 가는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많아요. 여기서 성공했기 때문에 가는 거라 "우리 거 너무 대단하니까, 우리만큼 대단하게 해줄 팀 있어?" 하는 마음으로 오시는 경우가 많죠. 반대로 일본 팀에 물으면, 일본 팀은 "이게 일본 시장에서 먹히겠어?" 하고 봅니다. 한국에선 당연히 될 거라 생각하고, 일본에선 일본 사람들 눈높이에 맞지 않다 생각하는 거죠.
그걸 깨려면 '스스로 겸손해 지거나', '내가 알아서 완벽하게 하거나' 아니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 중간 역할이 필요해요.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계속 일어나거든요. 그러면 또 에고가 나와요. '나는 나, 너는 너' 식으로요. 그 사이에서 계속 역할을 하고, 또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잘 보면, 성공 케이스는 한국에서 크게 성공해 큰 자본으로 일본 회사를 인수하거나, 일본에 따로 회사를 세워 일본 팀을 꾸려 그들이 주도적으로 사업하게 만든 경우예요. 라인도, 무신사도 그렇죠.
Q. 글로벌 진출 중에서도 유독 일본은 오래 걸린다고들 하세요. 저는 보통 일본 소비자가 한번 쓰던 브랜드를 잘 안 바꿔서 그렇다고 들었거든요.
일본 회사가 우리 걸 처음 보면 어떤 회사가 먼저 샀는지부터 물어보세요. 결국 첫 레퍼런스를 뚫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죠. 소비자로 봐도 그래요. 한번 뚫으면 오래간다고 하잖아요. 내가 쓰던 볼펜을 계속 쓰면 다른 걸 잘 안 찾아본다는 거예요. 일본 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이라 자기만의 바운더리가 있어요. 그런 프라이드가 있는 시장을 뚫는 데다, 우리가 한국 시장을 제대로 찾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전혀 모르는 시장을 찾아가는 건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래서 2~3년은 족히 걸린다고 보셔야 한다고 늘 말씀드려요.

Q. 그래도 요즘 일본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결국 K컬처잖아요. 대표님도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속도라기보다, 층이 달라진 거라 생각해요. 예전엔 한국을 좋아하는 층이 정말 50대 여성분들이었어요. 〈겨울연가〉 보시고요.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가면 그런 분들이 삼계탕 드시던 분위기였죠. 지금 가보면 10대, 20대가 정말 많아요. 단적으로 많이 달라진 거예요. 그런데 또 이렇게도 봐야 해요. 일본 전체 시장이 100이라면 그 K팬층은 아주 일부예요. 아직 갭이 있어요. 다만 한번 뚫리면 가랑비에 옷 젖듯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 거죠. 아직은 모든 시장이 바뀐 건 아니라고 봅니다.
Q. 적어도 2~3년은 계속 시도해볼 체력과 예산을 갖추고 도전해도 될까 말까 한 시장으로 봐야겠네요.
제일 똑똑한 건, 진출 하기 2~3년 전부터 미리 공부하는 거예요. 크게 투자하지 않으면서요. 법인 세우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 시장은 문화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겸손한 자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남아 갈 때, 미국 갈 때만큼 겸손하게요. 그런데 우리가 미국 갈 때만큼 일본은 겸손하게 안 가는 것 같아요. 투자가 크게 들어가는 시장이지만 그래도 그만큼 리턴은 있을거라 봅니다.
1,000억을 벌게 해주겠다는 목표
Q.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일본이 업으로서 중요해지셨는데, 올해 이 업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게 있을까요?
목표를 정했어요. 10년 후 목표인데, 바로 현금 창출이에요. 스타트업의 가장 큰 과제가 현금을 만드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를 만난 고객사의 현금 흐름을 앞으로 10년간 누적 1,000억 원 창출해주자'가 제 목표예요.
올해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고객 두 분만 만나자는 거고요. 일을 받아 장기 계약으로 가는 고객 두 분이요.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게 올해 목표이고, 일본 시장도 계속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하려고 합니다.
Q. 대표님의 의사결정은 일관된 기준이 있는 것 같네요. 시작도 사촌 오빠를 도우셨고, 회사에서도 오너의 목표를 같이 달성하려 하셨고, 사업도 크라우드펀딩으로 누군가를 돕는 일이었고, 지금 목표도 '내가 1,000억'이 아니라 '나로 인해 1,000억을 벌게 하는' 거네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누군가를 도와줌으로써 얻는 보람과 성취가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렇게 할 때 저도 제일 잘 돼요. 남이 잘돼야 제가 잘되는 것 같고, 그게 진짜 기뻐요. 혼자 잘되는 건 솔직히 고독하고 외롭거든요. 고독한 건 괜찮은데 외로운 건 좀 그래요. 같이 잘되면 이게 계속 커지더라고요.
Q. 그 두 클라이언트를 고르는 대표님만의 기준이나 조건이 있나요?
일단 클라이언트가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마음가짐이나 예산 같은 게 준비돼 있어야 하죠. 제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말씀드리는 게 절대 아니에요. 창업자분들 정말 훌륭하시거든요. 다만 준비가 안 된 채로 오시면, 잘하시던 것도 못하게 돼요. 그래서 매출, 이익, 인력 같은 부분을 다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이해, 즉 대표분이 일본을 진짜 잘 알고 애정이 있어야 성공하시더라고요. 그래야 시장을 계속 공부하고, 잘 안 된다고 바로 나가지 않고 어떻게든 이뤄내려 하시거든요. 그게 없으면 장벽 앞에서 싹을 틔우기도 전에 '일본은 우리랑 안 맞아' 하고 섣불리 판단하고 나가시죠.
가장 중요한 건 일본 시장에 니즈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니즈가 있고, 그럼에도 진출하겠다고 했을 때, 그때 비로소 시작인 거죠. 그 위대한 시작과 끝에 제가 함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OUTRO
박시진 대표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처음의 그 한 바퀴가 다르게 보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창업에서 실패로, 회사로,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멀리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이 길이 사실은 한 가지 일관된 마음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사촌 오빠를 돕던 첫 마음, 회사 오너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려던 마음, 누군가의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오도록 마중물이 되고 싶었던 크라우드펀딩, 그리고 나로 인해 1,000억을 벌게 해주자는 지금의 목표까지. 그녀는 줄곧 남이 잘되는 일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잘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큰 실패였다는 첫 창업도, 직장 생활 속 뼈아픈 경험도 그녀에게는 버려진 길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로 데려다준 우회로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 시장은 겸손하게, 오래 버틸 각오로 가야 한다는 조언은 어쩌면 시장에 대한 이야기이기 전에 그 자신이 한 사회와 한 업을 통과하며 몸으로 익힌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빠른 길이 늘 직선은 아닙니다. 멀리 돌아온 사람만이 지도 전체를 그릴 수 있으니까요. 박시진 대표는 그 지도를 들고 이제 다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시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편집・글: 이혜미 gbd.hyemi@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