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해외 유학을 하며 외교관을 꿈꾸던 한 학생이, 우연한 기회로 테슬라를 시승하게 됩니다. 스스로 차선을 바꾸며 달리는 차를 경험한 순간, '나도 일론 머스크처럼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 끌림은 한 사람을 외교의 길이 아니라 창업의 길로 데려갔습니다.
그 길은 한곳에 머무는 법이 없었습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번 사업을 벌였고, 어떤 것은 접었고, 어떤 것은 위기를 넘겨 살려냈죠. 그리고 10년 뒤, 그는 자신이 출발했던 글로벌 시장에 다시 도착했습니다. 다만 이번엔 혼자가 아닙니다. 더 많은 K뷰티 브랜드가 큰 무대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직접 바이어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한 가지를 깊게 파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자기만의 방식을 증명해왔습니다. 분야가 달라질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렇게 쌓인 경험은 지금 그가 글로벌이라는 가장 어려운 무대에서 길을 내는 자산이 되었습니다. 한곳에 머무는 법 없이 달려온 그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 봤습니다.
인터뷰 네이게이션
1. 창업가의 시작이 된 첫 글로벌 무대
2. 웹툰부터 프랜차이즈까지 치열한 실행의 기록
4. K-뷰티 글로벌 진출의 현실
5. 슈퍼 커넥터를 꿈꾸는 사업개발자
창업가의 시작이 된 첫 글로벌 무대
Q.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세요?
요즘은 "국내 K뷰티 기업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김은총입니다"라고 인사드려요. 사실 예전엔 저를 딱히 소개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워낙 여러 가지를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글로벌 수출에 집중하게 되면서, 그게 지금의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한 줄이 됐습니다.
Q. 대표님의 다양한 커리어 중 대표 키워드를 뽑자면 ‘글로벌’이 아닐까 싶어요. 첫 해외 경험이 중국에서의 학창시절이신거죠?
2003년에 중국으로 처음 유학을 갔어요. 그때 제가 중학생이었죠. 심천 근교에서 시작해서 상해로, 다시 베이징 국제학교로 전학을 가서 거기서 졸업했어요.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고, 그때 '중국이 곧 G2가 되니 미리 가 있는 게 좋다'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아직 어렸고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니 타지에서의 적응이 예상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그때부터 학교를 어디 갈지 같은 중요한 선택을 다 제가 직접 내렸어요. 빠르게 독립한 셈이죠. 그렇게 독립적으로 살게 된 건 지금 돌아보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Q. 해외에서 오랜시간 유학을 한 다음 회사를 들어가지 않고 바로 창업을 한다는 게 일반적인 선택지는 아닌 것 같아요. 원래부터 창업을 꿈꾸셨나요?
전혀요. 원래 꿈은 외교관이었어요. 필리핀에서도 1년쯤 살았던 터라 여러 나라를 거치며 국제관계 같은 일에 끌렸거든요. UN 기구처럼 나라 사이를 조율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간 학교(SUNY Stony Brook)엔 국제관계학이 없어서, 그나마 가까운 아시아학을 전공했죠. 외교 아카데미를 준비해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학교를 다녔어요.

근데 졸업을 앞둔 2015년 겨울방학에, 학교에서 생전 처음 보는 차를 발견했어요. 앞에 패널 같은 게 달려 있어서 처음엔 경찰차가 잠입수사 나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테슬라였어요. 차가 너무 멋있고 신기한 거예요.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형한테 부탁해서 시승을 해봤는데, 오토파일럿으로 차선을 알아서 바꾸는 걸 보고 완전히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게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어요. 이 사람이 한 게 결국 창업이고, 여러 번 창업을 했더라고요.
앞으로 이렇게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틈틈히 창업을 준비했습니다. 졸업반이라 수업을 적게 들을 수 있어서 수업 외 나머지 시간엔 창업 아이템을 생각했어요.
Q. 창업 준비는 어렵지 않으셨나요? 막막한 마음도 분명 있으셨을거 같아요.
사실 돌아보면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창업에 가까운 일들을 계속 했어요. 국제학교에 한국 아이들이 많았는데, 빨래를 한 번에 모아 돌려주는 일종의 세탁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고요.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 근처 한국 식품관에 주문을 모아 발주를 넣고, 배송비에 조금씩 붙여 받는 유통도 했어요.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 팔기도 했고요. 그때도 한류가 있었으니까요. '이게 창업이다' 생각하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기회가 보이면 재미있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계속한 거죠. 군대 다녀와서는 키즈카페도 운영했고, 아는 형 스타트업도 도왔어요. 오히려 취업보다도 창업이 더 익숙했다고 생각해요.

Q. 그럼 본격적으로 창업 이후에 이야기를 해볼게요. 많은 고민 끝에 시작한 첫 창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제가 영화나 피규어, 레고 같은 걸 좋아했거든요. '이쪽으로 사업을 하면 돈을 떠나서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2016년 11월에 사업자를 냈고, 안중근 의사 피규어 프로젝트로 시작했어요.
크라우드펀딩으로 진행했는데, 키워드가 독립운동이다 보니 시즌마다 연락이 오고 나름 화제가 되곤 했죠. 다만 스타트업다운 폭발적인 성장은 못했어요. 그더라보니 '이걸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과연 계속 힘을 줘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본격적인 창업이었다기 보다 프로젝트에 가까웠죠.

저는 제가 한 일들에 후회는 없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방향을 조금만 틀어서 피봇을 하거나 공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어봤다면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완전히 멈추는 대신 한 번 더 시도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Q. 그다음이 영어유치원이었어요. 또 완전 새로운 영역인데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어머니가 유치원을 오래 하셨는데, 그 지역에 재건축 이슈가 생겨 자리를 옮겨야 했어요. 어린이집·유치원은 부채율 제한이 있어서, 건물을 매입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게 됐고, 기존에 운영하던 유치원의 형태로는 운영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럼 영어유치원을 해보자' 하고 2019년에 함께 런칭했죠. 가족 사업인 셈이에요.
Q. 어머님께는 익숙한 영역이었지만, 대표님께 영어유치원은 기존에 했던 사업과 성격이 또 달랐을 것 같아요.
완전히 달랐어요. 일반 유치원은 정부 지원과 바우처 구조라 자리만 잡으면 모집이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그런데 영어유치원은 누가 봐주는 것도 아니고 완전한 자영업이에요. 프로그램부터 디자인, 로고까지 싹 다시 만들어야 했죠. 브랜드를 새로 만들고 런칭하고 영업하는 걸 1년 안에 다 했어요.
근데 코로나가 터졌죠. 학생 한 명만 확진돼도 일주일씩 문을 닫아야 했고, 그동안 선생님 인건비는 그대로 나가는데 수업료는 정상적으로 받을 수가 없었죠. 그렇게 2년 넘게 운영이 흔들렸어요.
Q. 이력서에는 이 시기를 '죽음의 계곡'으료 표현하셨더라고요. 쉽지 않았을 위기를 어떻게 넘기셨어요?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개인 브랜드였던 걸 프랜차이즈로 아예 바꿨어요.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는 심정이었죠. 프랜차이즈로 전환하면 또 0년 차나 마찬가지예요. 가맹 비용부터 인테리어까지 재투자가 계속 들어가니 부담이 컸어요. 어머니도 걱정하셨고요. 안 되면 정말 안 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었죠. 그런데 그 승부수가 다행히 잘 통했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최근엔 가족 법인으로 전환까지 하게 됐습니다.

Q. 영어유치원을 운영하시고 그 다음엔 창업이 아니라 회사로 들어가셨더라고요. 대표님의 이력은 정말 예측 불가인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입사 제안을 주셔서 더그림엔터테인먼트라는 웹툰 스튜디오에 신사업팀으로 들어갔어요. 제가 들어갈 때 40명 정도였는데 나올 땐 70~80명, 지금은 거의 200명 가까이 됐을 거예요. 코로나 시기에 웹툰이 엄청나게 빠르게 퍼지는 모멘텀을 겪었잖아요. 업계 1등 회사는 어떻게 일하는지, 웹툰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어요. 결론적으로 그때의 경험이 이후 창업에 좋은 발판이 됐죠.
Q. 실제로 그 경험으로 웹툰 스튜디오를 창업하셨고, 엑싯까지 하셨어요.
웹툰 스튜디오(히어로스튜디오)를 만들어서 IP를 빠르게 키운 다음, 연재가 필요한 회사에 매각했습니다. 창업 1년 만이었죠. 처음부터 엑싯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짠 건 아니었어요. 하다가 가능성이 보이니 빠르게 시도해봤죠.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업가라면 다양한 걸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Q. 그 다음 커리어는 창업도, 회사원도 아닌 교수님이네요. 작년까지 청년창업사관학교 전담교수로 지내셨죠.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초기 기업에게, 특히 저에게는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틈틈히 기회가 될 때 멘토링이나 강의는 계속 해왔는데, 멘토링은 아무래도 단발성이다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았죠. 긴 호흡으로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다면 훨씬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경력을 다양하게 쌓아둔 터라 어떤 기업이 와도 해줄 말이 많겠다는 자신도 있었고요.
기대만큼 제가 보람도 느끼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쉽게도 조직 개편으로 포지션이 바뀌게 되어 예상보다 짧은 기간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1년간 100여 명의 대표님과 밀착해서 소통하며 기술성과 사업성을 겸비한 '숨은 원석'을 발굴하는 눈을 검증받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커리어가 이렇게 다양하게 바뀌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잖아요. 대표님은 고민을 안하시나요?
많이 하죠. 제 아내는 한 직장에서 10년을 일한 금융인으로 스페셜리스트에요. 저는 반대로 제너럴리스트, 말하자면 잡식성이죠.
그래도 두 가지 자신감이 있어요. 첫째, 뭘 하든 일반 직장인이 받는 만큼은 저도 벌 수 있다. 둘째, 저는 스케일업을 해서 업사이드를 터뜨려야 하는 사람이다. 직장인으로도 살아봤지만 삶이 더 나아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지고 성장 포텐이 없는 것 같았어요. 오히려 여러 경험이 제 성향과 역량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늘 받는건 귀찮은 일지만, 사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뷰티 글로벌 진출의 현실
Q. 돌고 돌아 지금은 다시 글로벌로 오셨네요. 올해 본격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청창사에서 담당했던 17개 기업 중, 잘하는 곳들의 공통된 어려움이 해외 진출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잘하는데 아마존이든 어디든 해외로 나가는 걸 다들 버거워하셨죠. 한국에서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으니 무조건 나가야 하는데 말이에요. 간헐적으로 도움을 드리다가 '이건 이분들만의 어려움이 아니겠다' 싶었어요. K뷰티를 하는 누구나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할 텐데, 내가 확실한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면 확실하게 도움을 드릴 수 있고 메인 플레이어가 될 수 있겠다 싶었죠.
Q. 그치만 해외 유통망을 뚫는다는 게 언어를 잘하거나 외국 생활을 했다고 무조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맞아요. 언어는 사실 1도 상관없어요.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아야만 하는 영역에서는 제가 이길 수는 없어요. 그들이 저와 거래할 이유도 없고요. 그래서 저는 비어 있는 영역을 노려요. 코스트코나 월마트는 어차피 제가 지금은 못 뚫어요. 대신 작은 약국을 찾아가거나 팝업을 해보거나, 라이브커머스나 오프라인에서 새 유통망을 여는 분들과 함께 가는 거죠. 빈 곳을 선점하면서 조금씩 확장하는 거예요.

Q. 빈 곳부터 선점한다. 참 영리한 전략 같습니다. 요즘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팀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해나 착각들이 있을까요?
리스크를 안 지려고 하는 거예요. 참 역설적이죠. 한국에서 보통 퍼포먼스로 매출을 만들어본 분들은 '만 원 넣으면 3만 원 번다'는 ROAS식 사고가 있는데 이걸 해외에도 똑같이 가져오세요. 그런데 해외 시장에서 무조건적인 매출 보장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은 너무 불균형해요. 한국 뷰티 기업이 너무 많거든요. 코엑스 박람회에 가보면 부스가 길거리까지 나와요. 그것도 없어서 못 할 정도예요. 그만큼 바이어가 상대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고, 그들은 인디 브랜드 100개보다 대기업 제품 하나를 소싱하는 게 의미 있을 수 있어요.
‘내가 열심히 하면 바이어가 알아봐주겠지’ 생각하시는데, 슬프게도 그렇지 않아요. K뷰티 붐은 일부 기업의 한정된 이야기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럼에도 나가야 하니까, 한국 마케팅에 쓰는 것보다 해외에 더 쓸 각오를 해야 해요. 그게 쉽지 않죠.
Q. 글로벌 사업을 목표로 하는 분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직접 만드셨죠? 확실히 함께 정보를 공유하면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겠어요.
청창사에 있으면서 사업을 논의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대표님들께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이미 너무 많잖아요. 굳이 또 만들 이유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를 잡으니 의미가 보였어요. 한국 사람이 해외로 나가거나, 한국에 온 외국인이 여기서 사업하는 걸 돕는다면 이 커뮤니티만의 색이 생기겠다 싶었죠. 그렇게 작년 9월에 영글로벌스타트업커뮤니티(YGSC)를 런칭했어요. 지금은 링크드인과 카카오톡 채널을 합쳐 약 550명 규모로 발전했습니다.

Q. 대표님은 글로벌 진출은 대표가 직접 주도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전문 사업개발자를 따로 둬야 한다고 보시는지도 궁금하네요.
대표가 직접 참여하는 걸 베스트로 생각하지만, 핵심은 '의사결정의 주도권'인 것 같습니다. 해외는 속도가 생명이에요. 비용이 클수록 결정이 늘어지는데, 위에 팀장·본부장·대표가 층층이 있으면 너무 느려져요. 바이어의 톤앤매너는 일주일, 2주면 달라지고 경쟁사 제품은 계속 쏟아지거든요. 거절을 하더라도 바로 답이 나와야 다음으로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최종 결정권자가 직접 움직이는 게 가장 빠릅니다. 실무자여도 실권이 있다면, 예를 들어 이사나 팀장이고 위에 한두 명만 있어서 빠르게 결정할 수 있다면 괜찮아요.
K-뷰티 수출 15조 원 시대, 여전히 '틱톡 시딩'만 외치고 계신가요? 김은총 BD와 함께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 마케팅을 멈추고, 내 브랜드만의 탄탄한 글로벌 영업망을 구축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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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커넥터를 꿈꾸는 사업개발자
Q.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오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는 대표님의 목표가 궁금해 집니다.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기업을 해외 시장에 진출시키는 거예요.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에 4개의 기업이 진출에 성공했어요. 세 곳은 중국에서 라이브커머스를 하고, 한 곳은 네덜란드에 진출해 초기 발주가 나왔어요. 올해는 수치보다 일단 더 많은 업체가 나가는 걸 목표로 해요. 내년엔 거래액 50억 정도를 넘기고, 확실한 글로벌 유통사로 포지션을 잡고 싶어요.
장기적인 목표는 초기 기업에 자금 유동성을 공급하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프리A나 시리즈A 단계에서 정체된 회사가 너무 많고, AC도 VC도 후속 투자를 못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압도적으로 많은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조 단위로 움직이는 회사. 그게 제 최종 꿈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을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제 커리어는 한마디로 중구난방이에요. 하고 싶은 걸 계속해온 거죠. 어느 사회든 보통은 한 가지를 깊게 파고 전문성을 쌓는 걸 선호하잖아요. 그런 삶도 좋아요. 그런데 저처럼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사람도 있어요. 이렇게도 생존할 수 있고,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구나. 다만 리스크는 엄청 크고, 여러 사업을 벌이더라도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은 매번 가져야 해요. 안 돼도 괜찮으니, 일단 해보는 용기가 있길 바랍니다.
OUTRO
테슬라 한 대에서 시작된 여정은, 10년 뒤 전혀 다른 자리에 그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피규어에서 영어유치원으로, 웹툰으로, 레스토랑으로, 다시 글로벌 수출로. 분야는 매번 달랐지만 그가 한 일은 늘 같았습니다. 기회가 보이면 만들고, 위기가 오면 정면으로 돌파하고, 가능성을 증명한 뒤엔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그래서 그가 글로벌을 말하는 방식에는 과장이 없습니다. K뷰티 붐의 이면을 가감 없이 들려주고, 매출을 보장하겠다는 달콤한 말 대신 정말 어렵다고 솔직하게 먼저 말해주죠. 그래도 같이 하면 나갈 수 있다고, 누군가의 제품을 직접 들고 바이어의 문을 두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은총 BD는, 안 되면 방법을 바꿔서라도 끝내 길을 내고야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될 때까지 한다’는 그의 말이 그래서 빈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